
범죄도시 시리즈가 1편부터 4편까지 누적 관객 4천만 명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저도 개봉 첫 주에 극장을 찾았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이라는 소재가 단순한 액션 영화 포장지를 넘어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거든요.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앉았다가 결국 복잡한 감상을 안고 극장 문을 나왔습니다.
마동석 액션, 여전히 강하지만 '또동' 논란도 현실
마동석의 타격감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합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보니, 주먹 하나가 화면을 채울 때마다 좌석이 들썩이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복잡한 설명 없이도 강렬한 한 방으로 관객에게 쾌감을 전달하는 방식, 그건 마동석만이 가진 특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직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평론 쪽에서는 이를 '캐릭터 아이코닉성(Iconicity)'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캐릭터 아이코닉성이란 특정 인물이 반복 노출을 통해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마석도 캐릭터는 1편부터 4편까지 외형도, 말투도, 싸우는 방식도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강점이었지만, 4편에 이르러서는 '또동'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마동석이 엉뚱한 애드리브로 웃음을 줄 때, 1편에서 느꼈던 신선함이 4편에서는 다소 희석된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습니다. 팬으로서 바라는 건, 마석도가 언제까지나 같은 포즈로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변화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리즈별 흥행 수치를 보면 이 지점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 1편(2017): 제작비 70억, 관객 688만 명, 매출 560억
- 2편(2022): 제작비 130억, 관객 1,269만 명, 월드 박스 오피스 1,400억 돌파
- 3편(2023): 제작비 135억, 관객 1,068만 명, 월드 박스 오피스 1,000억 돌파
- 4편: 트리플 천만 달성 및 총 누적 관객 4천만 돌파 전망
수치만 보면 완벽한 우상향이지만, 그 안의 완성도 평가는 편마다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습니다.
빌런의 카리스마, 공들인 만큼 돌아왔는가
범죄 액션 장르에서 빌런(Villain)의 역할은 단순히 악당을 넘어섭니다. 여기서 빌런이란 주인공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관객의 감정적 몰입을 끌어올리는 서사적 장치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빌런이 얼마나 밉살스럽고 위협적이냐에 따라 마지막 응징의 쾌감이 결정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4편에서 김무열이 연기한 백창기는 분명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차갑고 절제된 눈빛에서 나오는 위압감은 꽤 강렬했습니다. 단도를 이용한 근접 격투, 빠른 동선, 냉정한 태도가 어우러져 역대 시리즈 빌런 중에서도 외형적 포스는 상위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클라이맥스에서 그 포스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백창기의 강점은 넓은 공간에서의 스피드와 단도 활용에 있는데, 최종 결투가 비행기 내부라는 협소한 공간에서 펼쳐지면서 그 특기가 절반도 발휘되지 못했습니다. 아쉬운 마지막 액션신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직접 겪어보니, 기대감을 한껏 올려놓고 정작 마지막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또 하나의 빌런인 장동철은 지능형 캐릭터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극 중에서는 얼빠진 모습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건 캐릭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각본(Screenplay) 구성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각본이란 영화의 대사와 장면 구성을 담은 설계도로, 빌런의 논리와 행동 패턴을 얼마나 촘촘하게 짰느냐가 캐릭터의 설득력을 좌우합니다. 4편의 빌런들은 그 설계도가 군데군데 허술했습니다.
범죄도시 1편과 2편의 빌런들이 무고한 시민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며 관객의 분노를 유발했던 것과 달리, 4편의 악당들은 주로 범죄자들끼리 충돌하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마석도의 응징이 나와도 카타르시스, 즉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해소되는 쾌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1편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 통쾌함과는 분명 온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감독 교체와 디지털 범죄 소재, 새 시도의 명과 암
4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변화는 허명행 감독의 연출 데뷔입니다. 그는 범죄도시 1~3편 전체의 무술 감독(Action Director)을 담당했던 인물입니다. 무술 감독이란 배우의 신체 훈련부터 카메라 앞에서의 격투 동선까지 액션 시퀀스 전반을 설계하는 직책입니다. 액션 설계 능력 하나만큼은 검증된 셈이지만, 이야기 전체를 이끄는 연출력은 또 다른 차원의 역량입니다.
솔직히 이 결정은 처음부터 논란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강윤성 감독이 1편에서 인물 간의 관계와 개성을 탁월하게 구축했고, 이상용 감독이 2편에서 좁은 공간 격투와 오락성을 극대화했다면, 4편은 두 선배 감독의 강점을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잇지 못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나마 이번 작품이 새롭게 가져온 소재는 분명히 평가받을 만합니다. 온라인 불법 도박이라는 소재는 조직폭력배 중심이었던 이전 편들 과 달리 현실적인 체감이 달랐습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국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사이버 금융범죄 피해액은 최근 수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출처: 경찰청). 이 같은 사회적 현안을 오락 영화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시도는 제 눈에도 인상적으로 들어왔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한국 영화 시장은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천만 관객을 넘긴 작품은 여전히 손에 꼽힐 만큼 드문 상황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런 시장 환경 속에서 범죄도시 시리즈가 2, 3, 4편을 연속으로 천만 고지에 올려놓은 것은 상업 영화로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성취입니다.
다만 장이수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분위기가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조연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3편의 초롱이가 그리워지는 상황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이번 편은 웃음 홈런을 터트릴 만한 장면이 부족했습니다. 개그 타율(웃음이 터지는 장면의 비율)이 낮다는 건 액션 오락 영화에서 생각보다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범죄도시4는 직전 편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많지만, 1편과 2편의 완성도에는 아직 한참 못 미칩니다. 그럼에도 극장에서 빠른 템포로 스트레스를 날리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5편이 나온다면, 빌런의 서사를 더 촘촘하게 짜고 마석도 캐릭터에 조금이라도 새로운 결을 입혀주길 바랍니다. 시리즈가 오래갈수록 변화 없는 반복은 독이 됩니다. 팬으로서 아쉬운 트리플 천만이지만, 동시에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시리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